<들머리인 삽당령에서 부산하게 장비를 챙긴다>

 잽싸게 차에서 내려 아이젠을 차고.......지난 번 대간길 추위의 기억 때문에 고어텍스 자켓과 방한장갑, 바라크라바도 단단히 챙겨 입었다. 이럭저럭 꾸물대다가 맨 후미로 출발하였는데....
 
                           <이게 진짜 심설산행!! 역광이라 더욱 분위기 나네~~~>
 
 처음부터 눈이 무릎에서 허벅지까지 차오른다. 한 걸음 떼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앞사람 발자국이 아닌, 맨 눈 위에 발을 내딛자 마자 그냥 허벅지까지 푸욱 빠져 버린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릿 속이 하얘진다. 간혹 산행기에서나 말로만 듣던 제대로의 심설산행!!!
 
3. 심설산행!
 앞사람 발자국에 맞추어 부지런히 걷고 또 걷는다. 평상시에는 한달음에 건너갈 평지도 한걸음씩 발을 떼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다. 다행히 바람은 거의 없는 온화한 날씨다. 금방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온 몸이 더워온다. 이거 만만치가 않다. 오르막은 더욱 힘들다. 아이젠을 신은 채로 눈속에 푸욱 파묻히고 눈이 달라붙어 무거워져 발을 들어 올리기가 더욱 힘들다. 아이젠도 미끌리는지라 추진력을 내기가 힘들어 자꾸만 제자리 걸음을 한다. 스틱 역시 눈속에 파묻혀 전혀 반동을 이용할 수 없다.  
                     <강골의 김회장님, 사람좋은 김은철대장님, 그리고 어리버리 나!!!>
 
 내리막은 내리막대로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아 자꾸만 몸이 기우뚱 거린다. 다행히 스틱으로 중심을 잡아가며 조금씩 전진하는데........
 오르막 산길에서 땀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하기 힘들다. 배낭을 내려놓고 쟈켓, 방한장갑, 바라크라바를 과감히 걷어 부쳤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하는데.......
 산길로 힘들게 한참을 가는데 임대장님이 옆길 도로변을 따라 유유자적 올라 오신다. 정말 부러워 보인다. 다시 되돌아 내려가 쉬운 길로 갈까 망설이는데.......회장님께서 발목이 완전치 않은데도 묵묵히 산길을 걸으신다. 얼른 마음을 바꿔 열심히 걷는데.......
 
 
4. 석두봉을 넘어.......
 힘들게 어찌어찌하여 석두봉을 넘어 내리막길을 걷는데.......앞에서 누군가와 전화를 주고받더니.....송총무님이 아이젠을 대뜸 벗고 내려간다. 그러더니 곧 엉덩방아를 찧고.....또 깔깔거리고 잘도 내려간다. 순간 아이젠이 이런 심설에서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벗으려고 하다가.....이내 그만 둔다. 안전이 제일인데....
 
                    <석두봉에서........러셀하시느라 고생하신 선두 일부님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심설의 모양, 깊이, 설질도 수시로 바뀐다. 몸의 균형도 잘 잡히지 않고 아이젠이 깊이 빠지면 빼내기가 정말 힘들다. 온갖 악조건과 싸워가며 가고 또 가는데.....당최 산행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시간을 보니 거의 3시간이 다 되었다.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이제 겨우 6~7Km (계획구간의 1/4정도)를 왔으니......몸은 기진맥진해오고......다리도 천근만근 무겁다. 바람이 없는 양지바른 곳을 지날 무렵 회장님께서 선두인 산의아들과 열심히 무전을 주고 받으시더니.....
 과감히 결단을 내리신다. 오늘은 중간인 닭목령 까지만(대략 12Km) 산행을 진행하기로! 현명한 결정이다. 그런데 중후미인 우리들만 힘든 줄 알았더니.......맨 선두에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은 몇배 산행이 힘드시단다. 선두도 너무 힘들어 기진맥진, 닭목령 이상은 죽어도 안된단다. 참 오래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깊은 눈밭에서 한 포즈~~~>
 
 갑자기 화색이 돈 우리들은 각자 점심 일행을 찾아 나뉘었다. 나는 송총무님, 회장님, 김은철대장님, 임형식대장님 5명이서 한 조가 되어 점심상을 차렸다. 매생이국, 찰밥, 고기반찬, 각종 떡, 컵라면에 임형식대장님이 버너로 누룽지를 구수하게 끓여 내신다. 정말 꿀맛이다. 긴장이 풀려 복분자주와 양주도 곁들여 마시니.......천국이 따로 없다. 하이얀 눈세상에 미소한 인간 5명이.......거나한 점심에 소소한 세상사를 곁들이니......인생은 이 또한 살 만한 가치가 있지 아니한가?????
  
5. 별유천지비인간!
 배를 든든히 채운 덕분에 속도를 내어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배가 부르면 몸이 힘들다. 참 이상도 하다. 왜 점심을 거나하게 먹고 나면 꼭 이렇게 힘든 깔끄막만 나타나는지......머피의 법칙인지 원~~~어렵게 깔끄막 두어개를 넘고나니 신발이 너무너무 무겁다. 그런데 앞에는 또 엄청난 깔끄막이 대기하고 있다. 송총무님에게 아이젠 없어도 괜찮으냐니까....빨리 아이젠을 벗어버리란다. 주섬주섬 아이젠을 챙기고 한발 한발 내딛으니......역시 훨씬 낫다. 눈이 아이젠에 들러붙어 올라오지 않으니 발이 몇 배는 가벼워진 것 같다.
 
                   <화란봉에서 다시 만난.......영원한 대간동료 슈퍼래빗!>
 
 어렵게 화란봉에 올라서니.......일행들이 대부분 멈춰있다. 풀잎님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장난을 많이 치신다. 눈사람도 만들고......눈을 뭉쳐 이사람 저사람 눈싸움을 걸어온다. 맨 후미에 오시면서 평상시에 맺힌 한이 많으셨나 보다.(사실은 산행실력이 좋은데 뒤에서 유흥을 즐기시느라 늦는다는 후문임)
 양지바른 내리막 길로 들어서니 유일하게 눈이 상당히 많이 녹아 아주 미끄러운 곳에 이르렀다. 모두들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는데........소심한 나와 철녀님 둘만이 아이젠을 다시 신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만사 불여 안전!
 
                   <좌로부터 홍삼한방님, 철녀님, 풀잎님, 나 그리고 슈퍼래빗>
 
 오늘의 중간 탈출로인 닭목령이 산 아래쪽에 보인다. 닭목령에 내려서기 전에 정말 눈이 내 허리까지 차오르는 설원이 펼쳐져 있다. 갑자기 모두들 사진을 찍느라 부산하다. 무사히 심설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들떠 여기저기에서 눈싸움도 즐긴다. 갑자기 옆에서 엄청난 하중이 나를 쓰러뜨렸다. 풀잎님이 그냥 몸으로 나를 밀어뜨리고(미식축구 선수처럼!!! 아마 1톤 정도의 힘이었으리라~~~)....모두들 벌렁 드러눕고서 마음껏 자유를 즐긴다.
 
                          <아마 풀잎님과 눈싸움 중 아니었을까???>
 
 항상 근엄하고 진지하신 홍삼한방님도 맘껏 웃으신다. 설원에 가득한 순백의 힘이 우리의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머얼리 쫓아내 버린다.
 
6. 안산으로 그리고 집으로!
 오늘의 중간 기착점이 된 닭목령에서 인증샷 한컷 하고.......선두에서 길을 개척하느라 수고하신 산의아들, 김대장님과 반갑게 상호 치하인사를 나누고.....강총무님께서 손수 부쳐주신 부침개에 막걸리를 몇 잔 거푸 들이키니......여태까지 힘들었던 산행 기억은 까마득히 멀어지고.........함께 한 산우들의 모습이 한결 가까이 느껴진다.

                                 <날머리 닭목령에서 철녀님과~~~>
 오늘 산행의 옥의 티!!! 평상시 보다 약간 이른시각에 산행을 종료한 탓에 모두들 하산 식사는 안산에 도착하여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토요일 저녁 지독한 정체로 인하여 버스가 안산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모두들 배가 고파 기진맥진!!! 후다닥 남원 추어탕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부지런히 각자 집으로 향하였다.
 
              <머얼리 대관령 및 선자령의 풍차가 보인다....저기까지 갔어야 되는데.......>
 
 나의 최초의 심설산행!!! 허리까지 차오르는.......그것도 6시간에 걸친 강행군! 집에 도착하니 마눌님이 걱정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일견 반갑게 맞아준다. 왠 환대??? 참! 둘째놈이 새터에 가느라고 혼자 있었지! 주섬주섬 내오는 두부 한 모에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오늘따라 마눌님도 이쁘게 보인다. 하는 말도 정겹고........아무려나 깊은 잠에 빠져들며........또 다음.....머나먼 대간 꿈길을 해매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