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계급은 령관급인 방령이다.
 

1982년 가을.

광주광역시 오치동에 있는 3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3주간의 군사기본교육을 마치고 나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라는 섬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임자지서의 무기관리 임무를 명받고 6개월간의 방위복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임자지서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입안에 저절로 군침이 돌 정도의 맛있는 냄새가 우리들의 코끝을 자극해 와 우리들은 도저히 그대로는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발길을 붙잡은 그 냄새의 진원지는 지서장님 부엌에 올려 놓은 백솥(무쇠로 만든 가마솥이후에 제작 보급된 알루미늄으로 만든 솥을 우리 시골에서는 백솥이라고 불렀었다.) 안에서 끓고 있는 소갈비 였다.

우리는 그 갈비가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감히 지서장님 갈비를 훔쳐 먹겠다는 생각에는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지서장님 부엌에 들어가서 그 갈비가 들어있는 백솥을 통째로 들고 와서 우리 방위병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동료들에게 같이 먹자고 했다.

동료들은 후환이 두려웠던지 얼른 달려들지를 않았다.

내가 먼저 갈비 하나를 치켜들며 “느그덜은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갈비를 가져온 놈도 나고 먹어도 된다고 느그덜을 꼬신 놈도 나니까 느그덜은 이 갈비를 다 먹어버려도 절대 죄가 없다. 글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해결을 할탱께 느그덜은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라면서 동료들을 꼬셨더니 한명 두명 갈비를 들고 뜯기 시작한다.

맛있게 갈비를 뜯던 동료들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어떻게 할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씩 내게 던지기는 했지만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고기를 뜯고 있고 그런 질문을 받을때마다 “모든 일은 내가 다 책임을 질 탱께 느그덜은 고기나 맛있게 먹어야.” 라는 말에 용기백배하여 뒷일을 잊고 고기를 뜯고 있었다.

그렇게 큰 백솥 안의 고기가 절반쯤 비워지고 있을 때 밖에서 지서장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마도 당신의 부엌에서 끓고 있을 소갈비가 맛있는 냄새만 풍기고 고기는 온데간데 없어 졌으니 얼마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는가?

 “방위! 방위!”하고 부르는 지서장님의 호출소리가 곧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갈비를 뜯던 우리 동료들은 너무나 놀라서 말 그대로 동작그만이다.

그때 내가 동료들을 안심시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그덜아, 느그덜 나만 믿고 걱정말고 한 놈도 밖으로 나오지 말고 여기서 계속 갈비나 뜯고 있어라이. 내가 나가서 해결하고 올탱께.”

하고 밖으로 나오니 지서 마당에 서 계시던 지서장님께서 그런다.

 “어이 방위, 방위, 너 내 방에서 끓고 있던 소갈비 누가 가져갔는지 못봤어?”

보기에도 짠한 표정이다.

다급하게 고함을 치는 지서장님의 말을 나는 태연한 척하고 받았다.

“서장님! 저 방위 아닌데요.”

“아니, 니가 방위가 아니여? 그럼 뭐여?”

“저 방령인데요?”

“방령? 방령이 뭐여?”

“서장님. 군대에서 위관급은 이마빡에다가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붙이고요, 령관급은 이마빡에다가 무궁화 계급장을 붙이거든요. 근디 내 이마빡에도 무궁화 계급장을 붙이고 있응께 저는 위관급 장교인 방위가 아니고 령관급 장교인 방령인디요?”

“뭐? 이자식이 나하고 농담을 할려고 해?(이때 곧 주먹이 날라올 태세다) 그건 그렇고 내 방에 소갈비 못봤어?”(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서장님의 얼굴은 이미 핏대가 올라올대로 올라와 있었다.)

“아 그 고기요? 제가 가져다가 방위들 먹으라고 줘서 이미 다 먹어 버렸는데요.”

이쯤 되니 지서장님은 곧 돌아버릴 태세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섬에 사는 2만여 주민들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지서장의 물건을 도둑 맞았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일진데, 하물며 그 물건을 훔친 범인이 자기가 통솔하고 있는 방위들이라면 더더욱 돌아버릴 지경이리라.

내가 방위들과 지서장님 고기를 먹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서장님의 부하직원들이 지서 마당으로 우루루 몰려 나온다.

물론 다 해봤자 차석1분과(경장) 순경2명이 전부지만.

그러는 사이에 내가 지서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서장님, 이번 한번만 봐 주쑈. 서장님은 봉급도 많이 받응께 언제든지 맛있는 것을 사서 먹기도 하고, 우리 임자도에서 맛있는 것이 생기면 모두가 서장님한티 가져오기 때문에 서장님은 평소에도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재만은 봉급도 웁고 먹을 것도 넉넉지 않은 우리 방령들이 을마나 먹고 싶었으면 서장님 고기를 먹어 버렸겄오, 그랑께 이번만 한번 용서해주면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것이구만요.”라고 사정을 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지서장님 곁에 있던 차석님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방귀 뀐놈이 성낸 격이 될련지 모르지만 얼굴을 한 대 얻어맞고난 나는 내가 준비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갈비를 지서장님이 돈주고 산 것도 아니고 뇌물로 받은 것인디 그 뇌물을 우리 방령들이 좀 먹어버렸다고 때리요? 쥐도 죽음시러는 그냥 안죽고 찍소리라도 허고 죽응께 뇌물을 훔쳐 먹어버렸다고 땔라면 땔고 말라면 말고 알아서 해부쑈.” 하면서 달려들었었다.

그러자 그 경찰들은 소갈비 얘기는 묻어 두고 방위주제에 지서장님에게 방령이라고 장난쳤다는 이유로 무지하게 얻어 맞았다.

덕분에 우리 동료들은 지서장님 소갈비를 훔쳐와 맛있게 먹고도 무사할수 있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군대 얘기를 하다보면 나는 대령과 준장사이에 방령이라는 계급이 분명히 존재했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1. 시골에서는 들에서 일하던 소가 갑자기 죽으면 육지에 있는 도살장으로 가서 분리를 해 와야 하는데 우리 섬에서는 소 주인이 동네사람들 몇 명 불러다가 분리를 해 버린다.

이것이 사실상 불법이기 때문에 지서에 알리고 지서에다가 소 갈비라도 가져다가 주고 지서에서는 이정도의 범죄(?)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죄(?)로 여겨 소갈비정도 얻어먹고 눈감아주고 하는데 이날의 소갈비도 그렇게 해서 생긴 소갈비였었다.

* 2. 지난번에 올린 글 중에 일부를 떼어내서 조금 다듬어 mbc 여성시대 단필충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는데 채택되어 지난 5월 3일에 방송을 하고 집으로 30만원짜리 쿠쿠 압력 밥솥이 왔다야. 텔레비젼을 받기위해서 나머지 내용 보낼려고 한다. 나는 방송을 직접 듣지 못했고 방송을 들은 사람들의 연락을 받고 알았는데 다시듣기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