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농장에서 띄우는 편지 36.

파꽃

정월 대보름 날, 쥐불놀이를 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헐고 닳아져서 못쓰는 고무신이며 운동화를 거두

고 칼집을 내어 새끼줄에 엮었다 빨랫줄을 받쳐준 간대 끝에 코를 꿰어
걸린 망둥어는 바다 넘어 섬 하나를 물어와서 하늘을 받치고 섰다 하늘에
파씨를 뿌렸다 어둠이 길수록 파씨는 은하수처럼 피었고 달도 별도 없는
밤에 은밀히 불싸움을 준비했다.

파꽃같은 환한 달이 뜨던 날, 동네 사람들은 일제히 용달산에 올랐다 매
콤한 고무 탄 냄새가 났지만 누구도 말이 없었다 옆 마을과의 불싸움은 끝
이 났지만 은하수 넘어 저 멀리 섬에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불꽃이 반딧
불처럼 서서히 꺼지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 횃불을 올렸다 풍어를 기원하며
하늘에 뿌린 파씨가 일제히 함성으로 일어서고 파꽃은 그렇게 밤새 피어 있
었다.

출처 :주당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 박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