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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2830
30기념문집
ㆍ작성자 유희민
ㆍ작성일 2012-02-15 (수) 05:48
ㆍ장르 수필
ㆍ추천: 0  ㆍ조회: 1061      
ㆍIP: 124.xxx.89
<보해의 세상보기>학습된 무기력과 인지부조화
<보해의 세상보기>학습된 무기력과 인지부조화
寶海 유희민 작가, cupscap@naver.com
동물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동물에서 나온 결과를 인간에 비교해서 어떤 증상이나 현상을 미루어 짐작하기 위해서다. 실험용 흰쥐는 생체학적 자료나 인체에 미치는 효과 따위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심리적인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원숭이나 개를 이용한다. 아무래도 다루기가 쉽고 또 여타의 동물 중에서 어느 정도 지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실험이다. 실험용 흰쥐에서 얻은 결과가 신약개발이나 의학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개나 원숭이는 인간을 포함한 이성적 판단이 조금이라도 가능한 모든 동물의 심리상태를 연구하는 게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의 실험으로 잘 알려진 것 중의 하나가 개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종을 치면 음식물이 없어도 종을 칠 때 개가 침을 흘린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대표적인 실험결과다. 그러나 개에 대한 실험은 다양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졌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개에게 아주 잔인한 실험을 했다. 우리에 갇힌 개에게 전기고문을 가하는 실험이다. 개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의 개는 코로 지렛대를 누르면 전기고문을 멈출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다른 집단의 개는 목줄을 달아서 꼼짝 못하게 했다. 한동안 전기고문을 가하니, 첫 번째 집단은 고문이 시작되면 바로 코로 지렛대를 눌러 고문을 멈추게 했다. 두 번째 집단은 그저 전기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묶어 두었던 목줄을 풀어주고 두 집단의 개 모두 우리 문을 열어놓고 전기고문을 가했다. 고문이 시작되자 첫 번째 집단의 개는 바로 문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두 번째 집단의 개는 목줄에 묶여 있지 않아서 도망갈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이 현상을 셀리그먼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불렀다. 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이야기다.

위의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인간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자신의 의사표시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훈련받으면 전기고문을 받는 그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탈출하려는 의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서양보다는 동양인이 그 정도가 심하고 또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진다고 한다. 좀 더 분석해 보면, 변화하지 않은 일정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관습에 젖어 사는 사람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認知不調和)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믿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간의 차이가 일치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념을 실제로 보고 있는 현상에 맞추려는 행동이다. 이솝 우화 중의 포도밭에 들어간 여우가 포도를 따 먹지 못하자 그 늑대는 스스로 ‘아마 저 포도는 대단히 신 맛을 낼 거야.’ 또는 ‘저게 무슨 맛이 있겠어?’ 하는 식의 자기 합리화로 대체해 버린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 포도를 따서 먹어봐야겠다는 의지는 애초부터 없다.

학습된 무기력이나 인지부조화 현상에 걱정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우리 선원들이다. 오랫동안 큰 변화없이 생활하는 선상에서의 생활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일들이 별로 없다. 배 타는 일이 징역살이라고 말하는 하소연은 자신이 결정해 주어야 할 중요한 사안까지 자신이 아닌 가족이나 친척들이 대신해 주어야 하는 생활에 적응되며 살아가는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말이 분명하다. 발밑으로 전기가 흐르고 있지만, 그 고문을 받는 괴로움을 그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무기력이 몸에 젖어 있는 것이다. 더러 큰일을 당해도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겠어?’ 또는 ‘뭐 당장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잘 되겠지.’ 하는 늑대의 그 자기 합리화로 대체해 버리고 만다.

비단 이런 문제가 선원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모든 의사결정을 부모가 대신해 왔던 대한민국의 인성교육이나 전통은 어떤 환경에 대한 도전이나 주관적인 사고를 많이 죽여왔다. 하물며 그런 환경에서 더 나아가 그보다 더 어려운 선상생활에서의 악랄한(?) 환경은 걱정과 우려보다 측은함마저 들게 한다. 그렇다고 그런 환경을 깨부술 수 있는 해결 방법은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가족들과 그들 때문에 살아가는 관변단체나 선사의 더 많은 도움과 협조가 필요할 뿐이다. 그들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은 위로의 말이 아닌 걱정없는 환경과 지극히 당연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우가 우리 모두의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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