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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2011-02-07 (월) 12:37 | ㆍ조회: 1800 | |
| ㆍ분류: | ㆍ추천: 0 | ㆍIP: 121.xxx.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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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의 서호를 보고 빙 둘러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황산이 있다. 황산을 거쳐 북경으로 가는 길에 난징이 보인다. 중국을 알려면 난징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병적인 강박관념으로 난징을 들른다. 황산을 찍은 영화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성룡 아저씨가 있어 가능했을까? 유명한 흑인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과 성룡이 만든 영화 < 베스트 키드>에 황산이 나온다, 영화에는 <마지막 황제>이후 두번째로 자금성 문이 열렸고 헬기로 만리장성을 찍는 등 중국 광광지에 파격적인 장면들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이다. 4만 여개의 돌 계단이 있다. 운무가 200 여일 끼어있어 산에 오르면 바다처럼 보인다고 해서 바다 海를 써서 북해 서해 남해로 나눈다. 그 코스를 따라 가는 투어가 각각인데 영화에서는 북해 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서해는 멋진 협곡이 있어 서해 대협곡이라 부른다. 더 자세한 것을 알려고 하면 짜증이 날테니.... 북해 /서해 대협곡 / 남해....이것만 알아도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다. 구글은 '중국안후이황산'으로 찾을수 있다. 이런 계단을 끝없이 오르다보면 어느새 운무에 젖어버린 황산을 볼 수 있다. 장가계와 더불어 최고의 명산이라 불리는 황산. 장가계는 산의 mother 황산은 산의 father 라는 말도 ^^ 산에 올라 구름이 끼면 운무를 감상하고 구름이 걷히면 이상향을 즐기라.. 운무가 걷히니 또 다른 장관이다. 석회암 지질로 이런 바위들이 가득하다. 황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黃山 당나라 황제가 이 산에서 신선이 되었는데 그때 입었던 옷, 용포가 황금 색이어서 이름이 황산이 되었다는 참으로 중국스러운 놀라운 황당 가장 유명한 바위 중 하나인 몽필생화...한자로 찾아보는 건 포기했고....이 이름만 기억하면 금상첨화 해가 지니 황산은 또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더욱 야시시하고도 색깔스럽다. 기암과 소나무는 황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산 중턱 쯤에 바다가 떠 오르고 바다에 걸린 해는 황산만을 위해 그곳에 닿아있다. 남들은 이렇게 산을 깎아만든 바위로 올라가고 갈 길 바쁜 88 일주는 이제 내려와 북으로 향한다. 황산은 저승에 더 가까울 듯 하다. 황산에 들어서면 이승의 어떤 욕심도 이미 버려질수 있을까? 황산을 그냥 아름답다라고만 본다면 멀리 오르는 길이 헛수고가 된다. 산을 정복한다는 것보다도 내가 산에 정복된다는 기분을 가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산 속에 내가 있어 산과 하나가 됨을 느끼는 것. 산의 호흡을 하고 산의 눈으로, 산의 소리로 산을 겪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일이 아닐까? 대화를 멈추고 혼자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를 때 가능한 일이다. 산길을 멈추는 곳에 산이 있다. 멈춰서야만 산이 보이고 산이 들리고 산의 호흡을 할 수 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일이다. 삶도 멈춰야 보인다는 말은 굳이 산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럴듯하다. 난징으로 간다. 북경(베이징)처럼 남경 (난징)은 1910-30년대 쑨원과 장제스의 국민당 수도였다. 그리고 일본에 의해 937년 30만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낀 중국과 그곳을 침공한 일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요즘 중앙일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야기 중국편에 한창 연재중이다. 난징 대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난징 난징>이다. 일본군의 사격으로 우수수 쓰러져가는 중국민들....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쉽게 중국을 접수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상하이에서의 국민당 저항이 의외로 완강했다. 열 받은 일본군, 난징에 들어가자마자 결국 일을 벌리고 만다. 이유도 없이 막가파식 살인을 저지른 일본은 지금도 수십명 정도라고 발뺌한다고 한다. 1937년 12월 13일의 일이다. 1925년 쑨원이 죽자 후계자인 장제스가 권력을 잡아 쑨원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드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그의 호를 딴 중산능으로 그 크기 때문에 난징의 주 관광 코스가 된다. 그리고 공자를 다시 불러내 사상 개혁을 실시한다. 모택동에게 밀리지 않았다면 중국의 영웅이 될 뻔한 인물이다. 왕고집이 결국 그를 대만으로 쫒겨나게 한다. 중산능... 중산은 쑨원(손문)의 호이다. 장제스의 공자 이념 부활로 공자의 제사를 하는 夫子묘 (공자 사당)의 옆 이곳 진회는 난징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유명한 40 대 관광지에 드는 곳이다. 진회 풍경구라고 한다. 용이 그려진 집과 호수가 이곳의 상징이다. 난징 학살 기념관...300000 만이라 씌어있고 각 나라의 언어로 적혀있다. 피해자 300 천. 지금도 난징에는 일본인들이 거의 발을 못붙인다고 한다.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난징 대학살 . 지금도 중국과 일본은 이 문제로 감정싸움을 하고 있지만 사이에 낀 우리는 그냥 강건너 불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는 어쩔 수 없이 보고 기록하는 이의 편견에 의존한다. 역사에 정의란 없다. 결코 옳고 그름이 나뉘어지지 않는다. 다만 반복한다는 점에서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겠다. 고구려가 중국땅을 차지한 것이나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한 것이나... 여권이 보는 눈이나 야권이 보는 눈이나.... 진보 세력의 눈이나 보수들의 눈이나..... 옳고그름없는 입맛에 맞는 편견의 시각일 뿐. 역사에서 진실을 찾기보다는 또다시 반복되는 일에 대한 학습으로 보는 게 현명하겠다. 역사는 무조건 반복된다. 인간은 원래 진화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에서는 똑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어있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역사는 인류에 기여한 바가 크다. 인간이 새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결과론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사건들은 과정보다는 동기와 결과로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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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