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지막 쿤밍을 떠나 달라이 라마가 사는 티벳 라사의 포탈라 궁까지가는 차마고도의 길. 총 길이 5000 여 킬로.쿤밍에서 샹그리라까지 비행기로 가서 거기서 차마고도를 출발한다. DVD로도 출시된 다큐 <차마고도>를 따라간다.
샹그리라라고 하는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 마을에서 소금 마을인 옌징을 거처 메리설산을 넘어 중국의 스위스라는 란우 호수를 지나 티벳의 수도 라싸로 들어간다.
차마고도. 차와 말을 교환하던 동서 최초의 교역로로 실크로드보다 200 년 이상 앞섰다고 한다. 티벳등 고산지대에 비타민 공급을 위한 중국의 녹차와 티벳의 말을 바꾸었다고 하여 만들어진 차마고도
상그리라라는 상징적 천국 마을은 오히려 차마고도의 출발점으로 더 알려져있다. 작은 마을 더친을 지나면 옌징이라는 소금 마을이 나온다. 바닷물이 융기되어 샘처럼 나오는 마을. 사각형 염전이며 교역의 필수품을 조달한다.
옌징을 지나면 차마고도에서 제일 높은 메리설산이 나온다. 등반대 사망률 90 % 라서 폐쇄되어버린 산. 영원히 신비의 산으로 남을만한 유일한 산이다.
메리설산과 티벳 흔적이 보이는 백탑.
산을 넘어서 앞으로 앞으로 가면 란우 호수가 있다. 해발 3800 미터의 아름다운 호수이다.
티벳에 도착하니 오체 투지를 마친 티벳인들이 앉아있다. 오체투지의 길은 멀다. 제 안위를 위한 길이 아니다. 오직 이웃의 안위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순례자의 생각이다. 2000 킬로미터 7 개월...차마고도의 길과 같다
드디어 티벳의 수도 라싸의 궁전 포탈라궁. 달라이 라마가 사는 곳이다.
표시된 윤난더친 현은 샹그리라 마을이 있는 곳이며 차마고도의 마지막은 라싸이다.
그곳에 사는 달라이라마와 브레트 피트가 만났다. <티벳에서의 7 년>이다. 1945년 전쟁을 피해 도마치던 독일 산악인이 우연히 티벳으로 흘러들어가 그곳의 달라이 라마와 지냈던 일을 기록한 영화이다.
포탈라 궁에서의 브레드피트와 어린 14 살의 달라이 라마 (현 달라이 라마). 망원경을 보며 세상을 궁금해하는 라마에게 피트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티벳을 이해하기에 훌륭한 영화.
1951 년 중국 공산당의 침공으로 티벳은 중국 자치구가 되고 만다.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다고 하나 역사는 침묵한다. 그해가 영화 <티벳에서의 7 년>의 마지막 해이다.
차 마 고 도..
길 위에 길이 있고 길 위에 길이 없다라는 말이 무척 어울리는 차마고도
生 위에 生이 있고 生 위에 生이 없다라고 또 말장난 하고 싶은 갱호
어디를 가도 길이지만 어디에도 제 길은 없듯이 어찌 살아도 사는 거지만 어찌 살거나 제 삶은 아닌거다.
혼돈 속에 작은 질서가 있어 실체를 멸망으로 이끌지는 않을테니 길 잃은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되는 법.
쉬었다가 갑시다.
보강
2011-02-18 16:26
길 없는 길 위의 나그네...
진용출
2011-02-18 17:54
오체 투지라 내가 감히 말 할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한 수도 정진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한번 쯤은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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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 수행에 들어가는 예비수행인 4가행(四加行)의 하나로 오체투지가 있다. 사가행이란 첫째, 불보살님께 귀의 예배하는 오체투지 절로서 몸으로 지은 과거의 악업을 참회하고 정화하는 수행법이다. 두 번째는 금강살타 백자진언으로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을 정화하는 수행이다. 세 번째는 불보살님께 공양하는 만달라 수행으로 수행 길에 복덕자량을 쌓는 방편수행이다. 네 번째는 나를 비우고 스승의 본성과 자신의 마음을 계합하는 구루 요가 수행이다. 이 네 가지는 각각 관상을 하면서 10만 번씩 마쳐야 한다. 이런 수행을 통해서 수행자의 악업이 정화되고 나면, 깨달음에 대한 확고한 열망이 생기고, 스승에 대한 신심과 헌신을 내서 딴뜨라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티벳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혼자 열심히 수행하는 사람이 이 생에 성취할 수 있을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스승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내는 사람은 금생에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또 “스승을 부처로 대하면 부처의 축복을 얻고, 스승을 인간으로 대하면 인간의 축복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티벳 불교는 스승의 역할과 스승에 대한 제자의 절대적 헌신을 매우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구루요가 수행은 또한 티벳 불교의 진수라고도 한다. - 네이버, 다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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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체 투 지 법 절의 근본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1) 절은 반드시 손과 다리를 모은 자세로 시작 합니다. 합장한 손안으로 두 엄지 손가락을 접어 넣고 손안에 값지고 귀한 보석을 감싸 쥔듯이 가슴 앞에 모음니다.[주1] 절을 시작하기 전에 오른쪽에 아버지, 남편이나 형제, 아들등 남성 친지 친구들을 모두 빠짐 없이 불러 세우는 것을 관 합니다. 왼쪽으로는 어머니와 할머니, 여자 형제와 딸 등 여자 친척과 친구들이 서있는 것을 관 합니다. 그들은 모두 나와 똑같은 자세와 마음가짐과 의도로 내가 절을 하는 동안 함께 절을 한다 생각 합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나에게 해를 입히는 이들은 특별히 앞에 세우고, 뒤로는 인간의 형태를 갖춘 모든 중생들을 세웁니다. 이 엄청난 대중이 모두 한마음 한뜻 한 동작으로 절을 하는데, 이때의 나 자신은 이 모든 대중을 이끄는 자이니 집중해서 절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절을 하기 위해 모여서 있는 저 앞에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위에 스승 나무가[주2] 솟아 있다고 관 합니다. 그 나무 한 복판에 나의 스승께서 법의를 갖춰 입으시고 수행을 하는 자세로 단정히 앉아 계시고, 스승의 오른쪽에는 석가모니, 왼쪽에는 미륵불, 아미타불, 관세음 보살등 모든 보살님들이 계시고, 스승의 앞으로는 수행을 돕는 여러 신장들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들이 있다고 관 합니다. 그런다음 먼저 스승과 부처와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 합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받는 공덕을 함께 절하는 모든 이들에게 회향 한다고 관 합니다. 2) 합장한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습니다. 이는 모든 존재를 유익하게 할 수 있는 천상계에 닫고 불성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 합니다. 3) 합장한 손을 이마에 대고 과거에 행했고 현재에도 행하며 앞으로 행할지도 모르는 육신의 모든 죄업과 부정의 정화를 관 합니다.(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4) 합장한 손을 목과 입에 대고 나와 모든 사람이 말로써 지은 현재, 과거, 미래의 죄업과 부정을 청청히 한다고 관 합니다.. 5) 합장한 손을 가슴에 대고 나와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지은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업을 씻는다고 관 합니다. 합장한 손을 이마, 입, 가슴에 대는 것은 부처의 법신, 보신, 화신을 성취 하고자 함을 상징 합니다. 6) 합장한 손을 풀어 내리며 내가 가진 모든 것과 육신을 동원하여 일체 생명을 돕기위해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관 합니다. 7) 무릎을 땅에 대며 윤회를 이루어 내는 우리의 망상과 무지를 없애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관 합니다. 이 것이 나 자신과 육도를 윤회하는 일체의 생명을 낮은 차원에서 구원하는 길이라고 관 합니다. 8) 손바닥을 펴서 바닥에 대고 쭉 밀어 뻗어 엎드리며 다섯 가지 길[주3]을 따라 보살의 십지(十地)[주4]를 차례로 성취해 가겠다고 다짐 합니다. 9)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머리 위로 합장한 손끝을 스승을 향하게 합니다. 스승님이 그 손을 통해 축복을 준다고 관 합니다. 손끝을 통해 스승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가 전달되고, 그 에너지가 차크라[주5]들을 연결하는 중앙 통로로 들어가 온몸으로 퍼져 온몸이 에너지로 충만됨을 느껴 봅니다. 10) 합장한 손을 다시 펴고 사지를 땅에 댑니다. 이것을 보살의 네 가지 능력의 성취라 관 합니다. 11) 손을 땅에 대고 받쳐 일어나 앉으며 모든 차크라의 통로들이 완전하게 열려 묶인 것, 막힌 것이 모두 풀리고 뚫렸다고 관 합니다. 또 몸의 모든 근육과 기관, 뼈들이 완벽한 형태를 갖추어 완벽한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고 관 합니다. 12) 앉을 때 척추를 똑바로 세우고 스승으로부터 받은 에너지와 체내의 모든 에너지가 중앙 차크라의 제일 밑에 바람의 형태로 뭉쳐진 다음 정수리로 빠져서 서방정토, 또는 불성에 이른다고 관 합니다. 13) 일어서면서 나와 모든 유정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육도 윤회에서 해방 된다고 관 합니다. 주)한국불교에선 합장을 할 때 양 손바닥 사이에 공간을 두지않고 밀착을 시킵니다. 이는 부처님과 자신의 합일을 의미하기 위함인데, 반면에 티벳불교에선 양 손의 손가락 끝들은 밀착시키되 손바닥 사이에 틈을 두어 그 안으로 두 엄지 손가락을 모아 접어 넣습니다. 이 틈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공(空)사상을 나타내기 위함 입니다. 또한 두 손을 합장함은 지혜와 방편(행위)의 합일을 의미 합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해 보이셨듯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이루어야 불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지혜란 공(空)의 참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방편이란 모든 중생을 가련히여겨 자신의 이익을 따지지 안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닦는 행위를 말 합니다. 지혜의 공덕은 6바라밀 중 선정과 지혜 바라밀을 수행 함으로, 방편의 공덕은 보시, 인욕, 지계 바라밀을 수행함으로 쌓입니다. 정진 바라밀의 실천은 지혜와 방편 두 공덕을 모두 쌓는 요소가 됩니다. 이러한 2종의 공덕이 쌓여 합일이 이루어 질 때 부처의 경지를 얻게 됩니다. - 네이버, 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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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철
2011-02-19 15:49
난징 대학살 학습이 티벳 대학살로 나타났구만. 킬링필드도 마찬가지고.
'길 위에 길이 있고, 길 위에 길이 없다' ->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