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제자들과의 덜(?) 유쾌한 만남 (장성여자중학교 임동후)

“다들 너무 좋다고 했다. 물론 나도 너무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난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사실 너희들 만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교사이기엔, 난 너무 부족하다. 과거는 어쨌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능력과 자질 면에서 한계를 느낀다. 니들 앞에서 왜소해지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반듯하게 장성한 너희들 앞에서 과거의 추억과, 좋았던 경험들만 얘기하기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다. 아마 술의 힘을 빌려 너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리는 눈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너무나 큰 기쁨으로 끝까지 환대해준, 너희들이 정말 고맙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십여 명의 제자들과의 만남이 끝난 뒤 나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이다.

잊을만하면 오랜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오랜 제자를 만난다는 것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퍽이나 당혹스럽다. 아니 당혹스러운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다.

그전에는 제자들과의 만남이 나도 훌륭한 교사라고 자위하는 훌륭한 수단이었으니까. 그리고 제자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선배님들이 부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과거의 제자들, 만나서 웃고 떠들고 과거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고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이라는 것을 연발하면서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낸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내일아침 가서 부딪쳐야할 지금의 우리 아이들 걱정을 해야 한다.

과거의 제자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나는 지금의 아이들, 소통이 잘 안되고 문화적 격차가 심한 요즘의 아이들로 인해 우리 교사들은 심한 자괴감, 더 나아가서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아이들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기에는 지금의 교육현실이 너무 척박(?)하다고 핑계를 대본다. 내 탓이 아닌 현실 탓이라고.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에서 요즘 아이들은 이럴 수밖에 없다고 사고 전환도 해보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과거의 난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요즘은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을 버린 지는 오래됐다. 학교현장이 아이들과의 관계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쪽으로 가속 진화되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어울리지 않는 자만도 해보지만 그건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이럴 때 과거의 제자를 만나는 건 지금의 현실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철저한 반성과 자아성찰이 필요한 우리 교사들에게 오히려 현실감각을 무디게 하는 마취제 같은 걸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 나는 또 제자들을 만나러 가야한다. 지금 교직에 나와 있는 제자들이다. 선생님이 되어있는 제자들을 만나는 건 더욱더 괴로운 일이다. 아니 모험에 가깝다고나 할까?

어떤 교사가 훌륭한 교사인지 지금 이 순간 어떤 교육이 가장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불분명한 이런 상태에서 ‘혹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는 질문이라도 받게 되면 정말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아마 이 훌륭한 제자들은 전혀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내가 특별하게 대답할 말이 없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한번 만나자는 오랜 제자들의 전화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만나려면 지금의 나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며 그들과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